Page 139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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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서예에도 해박한 식견을 가진 효당 선생은 청남 선생이 진주 의곡
사義谷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서예가로 왕성한 활동을 할 때에도 늘 함께 하
는 도반道伴이었다. 특히 효당 선생은 평생 원효 대사에 관하여 자료를 모
으고 연구하며 원효불교를 설파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근래 와서 원효의
불교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최범술 선생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다솔사의 역사는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우리 지성사에서도 중
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나는 그 당시 활동하던 김범부 선생이나
김법린 선생, 최범술 선생이 해방 이후 대학에 들어가 교수로 활동하며 그
지식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활동을 하였으면 우리나라 대학이나
지식사회나 교육이 발전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쉬
운 점이 많다. 동국대학교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본
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불교, 철학 등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으로 키워
나갔다면, 불교연구와 철학에서 가장 왕성한 세계적인 대학으로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가장 아쉽다. 지금이라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솔사에서 김정설 선생, 김법린 선생, 최범술 선생이 중심으로 활발한
지식공동체가 형성되어 활동하고 있을 때, 김정설 선생의 동생인 김동리
(金東里, 1913-1995) 선생도 가족과 함께 1934년 다솔사에서 설립한 광명학
원光明學院으로 와 교사로서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광명학원이라고
해봤자 김동리 선생 한 사람이 교사였고, 학생들은 아동부터 어른까지 다
양했다. 한글과 기초지식을 가르쳤다(사진 9). 김동리 선생은 1940년까지
다솔사 안심료에 머물면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쳐가는 동시에 이 선생들로
부터 우리 불교의 역사와 전통사상 등을 들었다. 신라의 지장地藏 김교각
(金喬覺, 695-794) 화상의 등신불等身佛 이야기를 들었고, 역사, 철학,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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