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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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 효서여연.
(許百鍊, 1981-1976) 선생이 맡는 등 당대 많은 명망가들이 참여하였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차를 전해준 이후 일본에서는 차도가 활발하게 발전
하였는데 반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차도가 소멸되다시피 하였는데, 최
범술 선생에 의하여 비로소 차도를 다시 정립하고 발전시킬 기틀이 만들어
진 셈이다. 효당 선생 사후에는 채원화蔡元和 원장이 반야로차도문화원般若
露茶道文化院을 설립하여 효당 선생의 증차법에 따라 차를 법제하고, 효당차
도를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차회와 차도교육활동을 국내외적으로 활발히 전
개하고 있다(사진 10). 오늘날에는 차인들의 활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하지만,
이런 불씨를 지핀 주인공들은 다솔사를 떠나 생각하기 어렵다.
어느 해인가 나는 강진康津 백련사白蓮寺에 들렀을 때, 유서 깊은 자생차
를 가지고 차를 만들고 차도를 이끌어 가시는 여연如然 화상의 방에 들어
간 적이 있다. 방에 들어서자 눈에 익은 글씨가 벽에 걸려 있었는데 안광
석 선생의 글씨다. ‘효서여연曉誓如然’. 그래서 ‘이 글씨가 왜 여기 있는가요?’
라고 물었더니, 당신께서 차도를 공부하며 다솔사를 출입하던 때인 1977
년 겨울에 효당 선생이 다솔사 죽로지실에서 차호茶號로 원효의 ‘효曉’자와
신라 서당誓幢의 ‘서誓’자를 따서 ‘효서’라고 짓고 옆에 계시던 청사 선생이
붓을 들고 법명과 함께 써주신 것이라고 하였다(사진 11). 나는 그 얘기를 듣
고 청사 선생이 즐겨 쓰시던 호인 대연大然과 여연 화상의 여연, 그리고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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