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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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었으며, 잡지의 활력은 이로 인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잡지가 발행되던 시기와 겹치는 1919년 3월 만세운동
에 대한 잡지의 논조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삼십본산연합사무
소의 위원장 김용곡은 3.1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노정하며 불교의 근
본 목적을 강조하며 불교도에게 종교인의 본분을 지킬 것을 촉구하였다.
“금반에 소요사건의 발발한 이래로 종종의 착오가 발생하며 제종
의 풍설이 훤전하야 전민족의 사상계가 동요되는 동시에 보통사회
는 물론하고 특히 오교에까지 기 영향이 파급하야 종교인의 본분
을 자실하는 자ㅣ 多니 심히 유감되는 바이라. 제군은 현명한 총
지와 명철한 두뇌로 고찰할지어다. 원래로 종교와 정치는 기 부분
과 목적이 전연 別物이라.”(16호, 김용곡, 「警告法侶」)
『조선불교총보』는 근본적으로 당시 현실의 여러 측면과 시국에 대한 피
압박 민족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어려웠고, 일제의 사찰령과 시행규칙을
준수하는 일 방향의 주장을 담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측면
은 『총보』 전과 후의 잡지에도 일정하게 작용하는 외적 기제임은 분명한데,
『총보』가 발간된 시기의 특수성, 『총보』 전체의 구성, 내용, 문체가 주는 고
답적 분위기로 인해 그러한 측면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능화 국학연구의 정점 『조선불교통사』
『불교진흥회월보』와 『조선불교계』를 통해 자료를 발굴하고 축적한 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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