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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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처/ 아니 아니,/ 모든 어둠마저도 부처 가 되었다. 시인은 결국 “진짜 내 글
”7)
씨 한 줄/ 삐둘삐둘 썼다 고 고백한다. 고독 속에서 ‘말 속에 말이 없는’
활구活句를 문자로 뱉어낸 것이다.
사실 글자가 무슨 신령한 물건은 아니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제28
「월주대주혜해화상越州大珠慧海和尙」조에 전하는 다음의 기록은 주목할 가
치가 있다.
[4] “경전은 문자와 종이와 먹물로 이뤄진 것이다. 본성상 공한 이
경전의 어느 곳에 신령함이 있단 말인가? 영험이라는 것은 경전을
지닌 사람이 쓰는 마음에 있다. 그래서 사물과 신령스럽게 통하고
감응한다. 한 권의 경전을 책상 위에 놓은 뒤 아무도 그 경전을 지
니지 않았는데도 경전 스스로 영험이 생기는지(있는지) 시험해 보
라(신령함이 생기지 않는다)[經是文字紙墨, 性空何處有靈驗? 靈驗者, 在持
經人用心, 所以神通感物. 試將一卷經安著案上, 無人受持, 自能有靈驗否]!”
경전 자체에 영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지닌 사람이 쓰는 마음에
신령함이 있다고 혜해는 지적한다. 이처럼 경전(문자)을 읽은 마음에 비로소
신령이 깃드는 것이지, 아무 것도 읽지 않은 마음 자체가 신령스럽게 변하
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 재미있는 이야
기가 있다. 문수 보살 등 32명의 보살들이 저마다 ‘둘이 아닌 진리에 들어
6) 시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의 마지막 부분.
7) 시 「진짜 내 글씨 한 줄」의 첫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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