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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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붙이지 않으면 촛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침묵을 돋보이게 한 것은
             언설言說이다. 말없이 무조건 침묵한다고 그 침묵이 진리와 계합契合하는
             것은 아니다. 침묵과 언설은 서로 도와주고 보충하는 관계다. 궁극적인 입

             장에서 보면 침묵이 진리와 계합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과정에 언설의 역

             할은 반드시 있다. 무조건 침묵을 긍정하고 언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소동파의 생각이다. 32보살의 말들이 유마 거사의 침묵을 돋보이게
             하고, 빛나게 해줬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불교적 견지에서 보면 시詩의 역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시 자체가 궁

             극적인 진리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시가 없다면 진리에 들어가는
             입구조차 찾기 힘들다. 최재목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다. 생활 속에서 부
             딪히는 소소한 사실들에서 진리를 추출하고, 그 진리로 다시 현실의 생활

             을 해석하고 설명하며 시인은 점차 깨달음의 세계에 몰입한다. 어느 순간

             ‘팍 터지며’ ‘그 무엇’을 터득한다. 최근 출간된 『나는 이렇게 살았다 어쩔
             래』(사진 1)를 읽으며 독자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몰록 깨닫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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