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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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세심동·개심사 표지석.


             있다. 고운 선생은 당나라에서 변란 속에서 생활을 하다가 황소黃巢의 난이
             토벌된 해 다음 해인 885년 헌강왕(憲康王, 875-886) 11년 3월에 신라로 귀국

             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조정은 이미 귀족적 향락 분위기속에 빠져 있었고, 사회
             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헌강왕 시절에는 당나라와 사
             신도 자주 오가고 일본도 사신을 보내오고 여진족의 보로국寶露國과 흑수

             말갈黑水靺鞨의 흑수국黑水國 사람들도 신라에 화친을 청해왔을 정도로 나

             라가 다소 번창하였다. 그렇지만 국가권력은 사유화되어 권력을 쥔 자들이
             자기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되어 버렸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나라를 떠
             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방에서는 조세도 보내오지 않아 국가재정은

             점점 나빠져 궁핍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판에 왕 자리를 놓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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