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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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반역을 일으키고 서
로 죽이는 싸움은 이미
오래 반복되었다.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
은 최치원이 혹시라도 중
요한 자리에 발탁되어 나
라를 개혁하고 자기들이
권좌에서 쫓겨나지 않을
까 걱정이 되어 견제하였
다. 그리하여 최치원은
왕경에 있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지방관으로 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
라에 귀국한 후 그를 끌
어주던 경문왕(景文王,
861-875)의 큰 아들인 헌
강왕과 둘째 아들인 정
강왕(定康王, 886-887)은
이미 죽었고, 정강왕의
누이동생 김만金曼, 즉
진성 여왕眞聖女王 아래
에서 각간角干으로 있었
던 경문왕의 동생이자 여
사진 3. 개심사 가는 돌계단. 왕의 숙부였던 김위홍(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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