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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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하고, 괴로움의 소멸[苦盡]을 관찰하며,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
                  법[苦出要]을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게 될 것이다.[T2, p.600ab]”



               위 경문의 ‘아련阿練’은 아란야(arañña, 阿蘭若)의 음사로, 숲속이나 동굴

             등 한적한 곳[空閑處]에 거주하면서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즉 아란야에서
             수행하는 비구는 마땅히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닦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다. 그런데 이 경에서는 앞에서 인용한 「윗자바기예나-숫따」의 내용과는 약

             간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다르게 설명한 것일 뿐이다. 불교

             의 수행은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에서는
             선정 이전에 갖추어야 할 지계가 사마타를 닦으면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리
             고 위빠사나를 닦으면 고집멸도를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고 한다. 즉 위빠

             사나 수행은 결국 지혜를 계발하여 무명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무명이란

             고집멸도 사성제의 원리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빠사나를 닦으면 사
             성제의 원리를 있는 그대로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면 욕루欲漏의 마음에서 해탈하고, 유

                  루有漏의 마음과 무명루無明漏의 마음에서 해탈하여 곧 해탈의 지
                  혜를 얻는다. 그리하여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였고 범행梵行은 이
                  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

                  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과거의 모든 다살아갈(多薩阿竭: 如

                  來)·아라하阿羅訶·삼야삼불三耶三佛께서도 다 이 두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성취하게 되었다. 그 까닭은 보살이 나무 밑에 앉았을 때
                  에 먼저 이 지止와 관觀, 두 가지 법을 생각하였기 때문이니라. 만

                  일 보살마하살이 지에 대해 터득하고 나면, 마원魔怨을 항복 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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