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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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比叡山과  교토로  갔다.  그곳에서  종수사宗粋
             社를 창설하여 종단 개혁을 주장했다. 잡지 『종
             수宗粋』를 창간해 종단의 구폐를 비판했다. 또한

             염불을  비난하는  일련종과의  논쟁도  불사했다.

             1899년 정토종 고등학원의 교수가 되었지만, 결국
             면직되었다. 그는 오히려 이 기회에 더 넓은 세상에
             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당시 지식인들과 더불                    사진 2. 모치즈키 신코.

             어 일본종교협회와 잡지 『종교계』를 만들어 활동했다. 당시의 불교인들과 학

             자들의 후원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종조의 어록과 행장을 총망라한 『호넨상
             인法然上人전집』을 완성했다.
               그리고 문연당文淵堂이라는 출판사가 『일본문학에 나타난 불교의 술어

             사전』을 편찬했으면 한다는 요청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장기간에 걸친 불

             교사전 편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4·6판 수백 쪽 정도의 사
             전을 생각했는데 그것이 점점 확장되었다. 그래서 천 5백 쪽의 사전이 되
             었고, 여기에 불교 대연표를 넣어 출판하기로 했다. 모치즈키는 자신의 집

             을 편집사무실로 사용했다. 당시에는 고지마 세키호児島碩鳳의 『불교사전』,

             와카하라 케이쿄若原敬經의 『불교기본사전』 정도였다. 이제 총 지휘관은 모
             치즈키가 되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불교인, 불교학자들이 총출동하여 대
             사전의 고지를 정복하고자 했다. 재정문제로 출판사가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08년 제1권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부록으로 예정된 「불교 대

             연표」를 다음해에 내놓았다. 이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
             나 2권까지 출판하고 좌절되었다. 그것은 완벽성을 꾀하고자 하는 모치즈
             키의 학자적 기질과도 관련이 있었다.

               한편, 종교의 역사는 모치즈키를 통해 참으로 정의의 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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