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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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정토종 대본산 금계광명사.
1911년 그는 지금의 종무총장에 해당되는 정토종의 집강執綱에 선출되었
다. 43세의 젊은 지도자였다. 그는 당연히 종단의 교육제도부터 개혁하기
시작했다. 정토종은 호넨 상인이 중세 가마쿠라 신불교의 선두주자로 큰
의미가 있는 종단이다. 최고종단인 정토진종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
에 이르러 문명의 전환기에 대응하는 교학을 새롭게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야마자키 벤네이山崎弁栄 등이 비신화적 관점에서 장
례불교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현실초월의 정토신앙을 현실 구제의 사명으
로 전환하고자 한 광명회光明會를 비롯해 교학수립과 교단개혁을 외친 여
러 운동가들이 나오기도 했다.
모치즈키는 종단의 그러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마침내 종학대
학 학장, 다이쇼大正 대학 총장은 물론 호넨 상인이 처음 초암을 지어 최초
의 정토종 사원이 된, 7대 대본산 중의 하나인 금계광명사金戒光明寺(사진
3)의 주지를 거쳐 1945년 지은원(사진 4) 제82대 문적門跡이 되었다. 문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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