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6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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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당양 옥천사 산문. 강선희 불자 제공.
구시년(久視年, 700) 측천무후가 신수를 궁으로 불러 법문을 들었으며,
이때부터 성가聖駕를 타고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을 왕래하였고, 제사帝
師가 되었고, 그에 따라 “양경兩京의 법주法主, 삼제(三帝, 睿宗·則天武后·中
宗)의 국사國師”라고 칭해진다. 측천무후가 죽은 이후 옥천사로 돌아갈 것
을 청했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오히려 중종中宗은 그에게 전국의 승가를
통섭할 것을 명했지만 노령의 이유로 제자인 보적普寂에게 양보하였다. 그
다음해인 신룡神龍 2년(706) 2월28일에 낙양 천궁사에서 101세의 나이로
입적하였으며, 3월2일에 중종은 ‘대통 선사大通禪師’라는 시호를 하사하였
다. 『능가사자기』의 「신수전」에는 “굴屈·곡曲·직直”의 세 글자를 유촉하였
다고 한다. 8)
신수의 선사상은 그의 저서로 확인된 『관심론觀心論』과 『대승무생방편
문大乘無生方便門』으로부터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대승오방편문大乘五方便
8)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90b) “遺囑三字云: 屈曲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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