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4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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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선사비명大通禪師碑銘』에 따른 것이라고 하겠다. 이에 따르면, 속성은
이李 씨이고, 변주汴州 위씨(尉氏, 현 河南省 尉氏縣) 출신이라고 한다. 신수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제생諸生이 되어 “『노자老子』, 『장자莊子』의 현지玄旨와
『서경書經』, 『주역周易』의 대의大義, 삼승경론三乘經論과 『사분율四分律』의 취
1)
지趣旨 등에 정통하여 훈고訓詁하였다.” 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신수는 출
가 전부터 상당히 학식이 뛰어났으며, 다양한 경율론을 섭렵했음을 알 수
있다. 신수의 출가 시기에 대해서는 『대통선사비명』에 20세인 무덕武德 8년
(625) 낙양洛陽의 천궁사天宮寺에서 받았다고 기술되어 있다. 2)
신수는 46세인 영휘永徽 2년(651) 홍인 선사가 황매黃梅 동산東山에서 선
법을 전한다는 소문을 듣고 홍인의 문하에 들어가 6년 동안 밤낮으로 정
3)
진하였으므로, 홍인이 “동산東山의 법은 모두 신수에게 있구나!” 라고 하
였다. 이후 신수는 홍인 문하를 떠나게 되는데, 『대통선사비명』에는 “그리
하여 눈물을 흘리며 물러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은거하였다.” 라고 기술
4)
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은 신수가 국가의 승록僧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
던 사도私度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대통선사비명』에는 의봉儀
鳳 연간(676-679)에 형초(荊楚, 현 湖北省)의 대덕들이 당양當陽 옥천사玉泉寺
(사진 1·2)의 주지住持로 추대하였고, 그때서야 신수는 비로소 국가의 ‘승
록’에 올랐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앞에서 언급한 20
5)
1) [唐]張說, 『荊州玉泉寺大通禪師碑銘幷序』(『全唐文』 卷231) “老莊玄旨, 書易大義, 三乘經論, 四分律儀, 說通
訓詁.” 이 『大通禪師碑銘』은 宋代 祖琇의 『隆興佛敎編年通論』卷14(卍續藏75, 179c-180a), 元代 念常의 『佛
祖歷代通載』卷12(大正藏49, 586b-c)에도 실려 있다.
2) 앞의 책, “禪師武德八年乙酉受具於天宮.”
3) 앞의 책, “東山之法, 盡在秀矣!”
4) 앞의 책, “於是涕辭而去, 退藏於密.”
5) 앞의 책, “儀鳳中始隸玉泉, 名在僧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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