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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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畏友’ 이종천의 추천으로 입사하였다.(3호, 「입사의 변」) 이종천과 박병호는
울산, 통도사를 기반으로 『축산보림』 제작 전후로 청년회 활동을 함께 펼
쳐나간, 지역의 민족운동을 대표한 선각자들이었다. 이종천은 이후 불교
청년회 간사, 포교사 그리고 옥천사가 설립한 진주 진명학원 교원으로 활
동하였고, 박병호는 울산 출신으로 3.1운동 직후 울산청년회를 만들어 초
대 회장을 맡아 민족운동에 나선 인물이다.
필진 중에는 다수의 일본 유학생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논설과 문학 작
품, 축사 등을 투고하여 젊은 잡지의 면모를 갖추는 데 기여하였다. 이도
현, 김진목, 문세영, 이지영 그리고 필명으로 등장하는 동성東星은 당시 일
본의 각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던 학생들인데, 이들의 기고문을 통해 보면
당시 일본에서도 잡지 발행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또
김구하와 유학생, 이종천과 후배 유학생 사이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을 가
능성을 보여준다.
『축산보림』에서 보여준 청년들의 목소리와 유대는 이후 전개된 불교청년
회 활동으로 이어지며, 1924년 동경불교유학생회에서 『금강저』를 발간하게
되는 데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경성에서 멀리 떨어
진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간행한 부피도 작은 잡지 『축산보림』은, 사실은
당시 최고 지성의 집합소인 동경유학생들의 성원을 받으며, 또 그들의 투
고가 함께 한 의미 있는 잡지인 것이다.
신·구세대의 종교론
김구하는 「이십세기 불교」(1호), 「참괴慚愧의 가치」(2호), 「평상심시도平常心是
道」(3호), 「대자유大自由 대평등大平等」(4호), 「작일금일급명일昨日今日及明日」(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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