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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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도록 마룻장 밑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두었다.
어느덧 방학이 끝나고 친구들이 모두 떠나면서 딱지 칠 일도 사라졌다.
자연히 딱지의 존재를 잊고 지냈고, 시간이 한 참 흐른 뒤 우연히 마룻장
밑에서 딱지뭉치를 발견했다. 애지중지하던 딱지였건만 그새 곰팡이가 피
고, 쥐똥과 뒤엉켜 썩어가고 있었다. 아끼면 똥 된다는 속담을 실증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서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친구에게 나눠주지 못한 것이 후
회되었다. 그때 딱지 몇 장을 나눠가졌더라면 놀이는 더 진행되었을 것이
고, 나는 인심 좋은 친구라는 덕담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지는 이미
쥐똥과 함께 썩어버렸고, 친구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딱지는 친구들과 놀
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친구들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물건이
었다. 그런데도 부질없는 수단에 집착하다 정작 소중한 관계를 놓치고 말
았던 것이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아끼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는 것은 어린
시절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물질과 재화 역시 이
와 다르지 않다. 친구들이 있어야 딱지가 의미 있듯 삶과 관계가 지속되어
야 물질적 재화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물질에 집착할 때 따라 붙는 한 가
지 전제는 삶이 천년만년 계속 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사들은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다음 생이 온다.’고 했다. 삶이 영원할 것 같아 가진
것에 애착하지만 무상無常의 파도가 덮쳐오면 애지중지하던 것들은 친구가
떠난 뒤의 딱지처럼 부질없는 법이다.
때로는 단지 똥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남긴 것들 때문에 자식
들 간의 갈등과 싸움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치가 이럼에도 우
리는 가진 것들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심초사 하며 살아가는지 모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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