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8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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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인재, 유능한 포교자에 의해 성대하게 되니, 조선의 각 본
산 거찰들이 연합기관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을 통해 본교를 설립
하여 능력 있는 불교적 인재를 양성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
교의 학생들은 이 취지를 알고 오로지 배우고 정진하여 불교에 대
한 굳은 신념과 깊은 학식을 얻어서 뒷날 조선불교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을 각오로 분투하고 활약해야 할 것이다. 조선불교의 앞
날이 희망차고 밝음은 분명하니 본교에서 배우는 여러분들의 책임
은 무겁고 본교의 사명 또한 매우 큰 것이다.”
뒤에 《일광》이 폐간된 1940년은 중앙불전이 혜화전문으로 개명된 때로
서, 당시 일제는 전시체제를 강화하면서 전문학교를 개편하고 교명을 바
꾸게 했다. 1940년 6월 19일 혜화전문학교가 출범하면서 경성제대 교수
를 지냈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가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다. 이때의 학제
개편은 총독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고 이를 반영하여 기존의 불교과, 문
과와 함께 대동아 공영권을 떠올리게 하는 흥아과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박한영, 권상로, 김영수 등 한국인 교수와 강사 상당수가 파면
되고 경성제대 출신 및 일본인 교수들로 채워졌다. 다카하시는 1941년 4
월 교장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권상로 등이 복직되었다. 에다는 혜화전문
시절에도 계속 재직했지만 《일광》의 폐간으로 이 무렵 그의 구체적 활동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혜화전문은 전시체제가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9월에 강제로 폐교되었
고,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1946년 9월에는 학제
변경에 의해 교명을 동국으로 바꾸고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에다 도시오는
해방이 되고 바로 일본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이는데, 출신 학교인 고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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