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3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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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산속 깊은 절에서 단식 좌선을 하던 8
일째 되던 날,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이대로 죽
어버린다면 허망할 것이라고 느꼈다. 자신은 수
행보다는 학문에 의해 진리를 깨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산을 내려오다 술 마시며
시신을 화장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술을
권했지만 거부하고 피곤이 겹쳐 그대로 잠이 들 사진 1. 65세의 가와구치 에카
이. 사카이시 시립도서
었다. 일어나보니 화장을 하던 사람들은 없고, 관 제공.
자신의 몸에는 볏짚이 덮여 있었다. 체온을 간직
하도록 그들이 덮어준 것이다. 1888년 이노우에 엔료가 창설한 철학관에
들어가 힘들게 수학했다. 1890년에는 도쿄의 황벽종 오백나한사五百羅漢
寺에 출가했다. 스승의 급작스러운 은퇴로 주지까지 맡게 되었다.
그러나 철학관 졸업과 동시에 사퇴했다. 종단의 부패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교토부의 우지시宇治市에 있는 황벽종 본산인 만복사萬福寺의 말
사인 별봉원別峰院에 틀어박혀 한역 대장경을 줄곧 읽었다. 그러는 와중에
또 다시 종단에 부정이 횡행하는 현실에 눈감을 수 없었다. 정화운동의 선
두에 나섰지만 쓴맛만 보았다. 산을 내려와 자신의 초심으로 돌아갔다.
경전의 원전은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로 쓰였지만 인도에 가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렵다. 인도는 불교가 소멸된 지 오래되어 아마도 원전 구하기
는 어렵고, 가까운 네팔이나 티베트에는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티베트어
역 경전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스리랑카에서 돌아온 샤쿠코
넨釋興然을 만났다. 그는 일본 최초의 상좌부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남방
불교의 계율을 받고, 산스크리트어 및 팔리어에 능통했다. 그를 도우며 가
르침을 받는 중에 ‘불교 일요학교’를 열고 찬불가나 연극 등을 가르쳤다.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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