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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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에는 팔굉일우의 세계 형성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당
시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옹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국가의 근저에는
국가성립의 신화가 있으며, 초월적 존재, 내재 즉 초월적으로, 절대 현재의
자기 한정으로서 역사적 생성적인 일본의 역사에 있어 처음부터 국가 즉
도덕의 국체라는 것이 자각되었다고 한다. 결국 천황은 물론 이를 뒷받침
하는 이데올로기인 국체가 순수절대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천
황은 신성불가침인 것이다.
최근 여러 연구에서 스즈키나 니시다는 일본의 대외전쟁에 직접 참전하
지는 않았지만, 당시 민중을 고통으로 내몬 국가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것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지식인이 책무는 당대의
파사현정이 우선이다. 더욱이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져 구원의 손길이 필
요할 때, 학자든 종교가든 사회의 파수꾼들은 그 원인을 제거하여 만인에
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원효元曉는 화쟁을 말하기에 앞
서 이 파사현정을 제시했다. 선불교인들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
다. 선악을 구분하는 정견이 수반되지 않고, 이를 관념의 피안으로 이월移
越시켜 자신만이 아니라 대중들로 하여금 오도된 이념의 맹목성을 갖게
하는 것 또한 죄악이 된다.
권력의 절대화에 의해 민중이 희생되는 역사는 단절되어야 한다. 도겐道
元이 수행을 계율과 함께 도모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니 모든 선의 조
사들은 계율을 수행의 가장 근본에 놓았다. 비록 선의 철학화에 성공했다
고 하더라도 생명력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은 종교를 담을 수 있
는가’라는 화두가 발생될 수밖에 없다. 종교와 철학의 만남, 양자의 회합
이 궁극적으로 민중의 총체적 삶을 온전히 관통할 수 있을 때, 참된 조화
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니시다 철학은 반면교사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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