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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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형제들, 일송一松 김동
             삼金東三(1878-1937)  선생
             등과 같은 대유학자를 위

             시하여 수만 명의 경북 사

             람들은 가산을 처분하고
             허허벌판 황무지  만주로
             망명하여 구국투쟁에 들

             어갔다.  이  당시에  있었

             던  일이다.  대계  선생의
             제자 심산心山 김창숙金昌
             淑(1879-1962) 선생은 스

             승의 뜻을 이어 평생 독            사진 10. 극락전 중정의 삼층석탑.

             립운동의 전선에 나섰다. 해방 후 인재의 결핍을 겪었을 만큼 우리는 이렇
             게 조선의 뛰어난 인재들을 독립전선에서 많이 잃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
             는 이 땅에 살다간 위대한 선조들의 삶은 이렇게 비장하고 고결했다! 동농

             선생의 현판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있는 중에 처절했던 역사의 장면들이 파

             노라마처럼 떠올랐다.
               해묵은 기둥이 누각을 받치고 있는 만세루 아래를 지나 작은 돌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대웅전의 앞마당에 발을 내딛게 된다. 좌측에는 화엄강당

             이 있고, 우측에는 무량해회라는 현액이 걸린 건물과 이 건물에 연이어 세

             워진 공덕당功德堂이 늠름하게 서 있다. 대웅전은 1435년 세종 17년에 중
             창한 기록으로 볼 때, 조선 초기에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단층으로 지
             은 건물이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하고 좌우에 어려서 아라한과를 얻

             었다는 두타제일頭陀第一 가섭迦葉(Mahākāśyapa)존자와 싯다르타의 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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