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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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겼다가 없어
지기를 반복하는데, 붓다의 가르침
도 그에 따라 보였다 사라졌다 하
는 것이리라. 아무튼 극락전에서 앞
으로 바라보면 산하가 호호탕탕浩
浩蕩蕩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 원
래는 앞마당을 가운데 두고 우화
루雨花樓가 고금당과 지붕을 연하
여 극락전 맞은편에 서 있었다고 한
다. 우화루는 현재 영산암으로 옮 사진 14. 영산암 오르는 돌계단.
겨져 응진전으로 들어가는 문루 역할을 하고 있는데, 원래는 극락전이 있
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루로 세워졌던 것이다.
봉정사에는 주요한 유물들이 있다. 계곡을 메워 습기로 둘러싸인 성보
박물관에는 대웅전의 흙벽에서 떼어낸 여러 점의 벽화조각들과 후불벽화
가 있다. 후불벽화는 높이 307센티 너비 351센티의 크기에 그려진 영산회
상도靈山會上圖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벽화이다(사진 11). 이런 소중한 유
물을 급조한 유리방 안에 놔 두거나 임시로 만든 서랍이나 거치대 위에 그
냥 방치하고 있고(사진 12, 12-1), 경판고經板庫에 있었던 대장경 경판도 철제
책장에 모아 놓고 있는 형편이다(사진 13).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사찰에서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형편이 이러하다. 도대체 20여 년 동안 이
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데,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여기에 다녀갔다고 떠벌리고 관광버스나 많이 오
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은 아직 수준 이하
이다. 창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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