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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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 붓다도 정각을 이루기 전에 이미 윤회사상을 믿고 있었다. “비구들
이여, 내가 깨닫기 전,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수행자)이
었을 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참으로 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
하구나.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SN.Ⅱ.10) 『증일아함
경』 제23권 제1경에는 “이와 같이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다. 저기서 죽어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죽어 저기서 태어난 인연의 처음과 끝을 모두 밝
게 알게 되었다.”(T2, 666b)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경전의 근거를 통해 붓다
는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이미 윤회사상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윤회
설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붓다는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선과 악의 업도 없고 그 과보도 없으며,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없다.”(T1, 437c)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견해[邪見]
라고 가르쳤다. 이처럼 붓다의 모든 교설은 윤회설 위에 건립되어 있다. 만
일 불교에서 업과 윤회를 부정하게 되면 붓다의 전체 교리체계가 무너져 버
린다. 붓다는 처음부터 윤회를 전제로 자신의 가르침을 펼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윤회라고 하면 ‘생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말한
다. 즉 이 세상에서 죽으면 저 세상에 태어나고, 저 세상에서 죽으면 다시
다른 세상에 태어난다. 이것을 윤회라고 한다. 윤회란 “자신이 저지른 행
위에 따라 삼계三界와 육도六道를 돌고 돌면서 생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
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삼계·육도의 의미
삼계·육도는 중생들이 생사를 되풀이하면서 윤회를 펼치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삼계·육도는 분류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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