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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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6. 우화루의 마루.
응진전 마루에서 내려와 계단으
로 내려오면 조그만 석등 하나가
서 있다. 영산암의 안뜰은 작지도 사진 17. 우화루 현액.
크지도 않으면서 전체 건물들의 크기와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화루
를 이곳으로 이건한 바람에 중정이 우화루, 관심당, 응진전, 송암당의 건
물로 미음자(ㅁ) 모양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되어 아늑하고 고요하다. 흙과
나무와 돌과 건축물과 풀들이 작은 공간에서 화엄세계를 이루고 있다(사
진 15). 이 겸허하고 경건한 뜰에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사방의 어느 마루에 앉아 보아도 내 마음의 거울을 들여
다보는 것 같고, 소나무와 백일홍의 그림자가 흙마당에 엷게 깔리는 밤에
우화루 마루에 앉으면 그야말로 정좌靜坐의 고요 속에서 자신을 보게 된
다(사진 16). 우화루의 우화라는 말은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를 말하는데,
붓다의 가피가 꽃비 내리듯이 내린다는 의미이다(사진 17). 최고의 격조를
갖춘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응진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고 붓다의 제자 가운데 바른 앎을
증득하여 번뇌를 완전히 벗어난 소승小乘의 최고 상태인 아라한과阿羅漢
果를 얻은 16인의 아라한阿羅漢(arhat, arahant), 즉 나한들을 봉안한 공간
이다. 뛰어난 성인(saint)을 모신 집이다. 나한전 중에는 16아라한을 모시는
응진전이 있고, 500인의 아라한을 모시는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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