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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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 지조암.
원을 성취하게 해주는 특별한 공력이 있다고 하여 오백나한에 대한 숭배
가 성행하여 사찰에 따로 나한전을 짓는 일이 생겼다. 유럽의 카톨릭 성당
건물에서 볼 수 있듯이, 지붕이나 벽에 성자들의 상을 세우는 것과 유사
하고, 수호성인을 정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성인들이 복덕을 비는 대상으
로 되면 그 본래의 의미는 변질되기 마련이다. 응진전이 의미를 가지는 것
은 여기서 기도하고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아라한과 같이 무명無明에서 깨
어나 밝은 진리를 체득하는 상태에 도달하도록 분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
는 데 있으리라.
지조암은 오늘날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선원이다. 이곳은 대웅전이 있
는 공간과는 따로 떨어져 있어 산 속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지조암에는
천등선원, 관음전, 칠성전, 승방과 부속 건물이 있다(사진 19). 결재가 끝난
기간이라 봉정사에서 수행하고 싶은 스님들의 발걸음이 잦은 계절이다. 이
시대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는 수행승들에 달려 있는 만큼 이런 수행
공간이야말로 불교의 생명이 아닌가 한다.
한때 찬란했던 대가람에 조그만 부도 세 개만이 남아 있다. 전란 중에
없어졌거나 유가들이 없애 버렸거나 아니면 다른 용처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부도들은 내 마음에 있기에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에
게는 언제나 보일 것이다. 영산암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붓다가 걸어
간 길만큼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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