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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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침과 수행이 어떠했으며, 승려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하는 점이
          다. 찬란했던 신라가 중대 이후로 오면서 그간 권력을 쥐고 호의호식하던
          무리들은 오랜 세월 왕위쟁탈전으로 날을 지새웠고, 하대에 와서는 농민

          들이 곳곳에서 못 살겠다며 난을 일으켜 자기 살 길을 찾아 나서는 지경

          에 이르렀으며, 지방의 호족들도 들고 일어나는 등 혼란의 시기로 빠져들
          었다. 선종이 확산되어 가던 시절의 사바세계娑婆世界 풍경이다.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이 세상이 극락정토라는 것은 더 이상 믿지 못할

          거짓으로 드러났고,  이제는 파리목숨 같은 이 삶이 죽어서나마 극락왕생

          을 했으면 하는 가느다란 희망만이 살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또
          도피처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지극정성으로 외우면
          죽어서 극락왕생한다는 내세신앙에 희망을 걸어보기도 하고, ‘불쌍한 민초

          들을 구해 줄 미륵불彌勒佛이 와서 우리를 구해 줄지도 모른다’는, 불교의

          원래 철학과는 거리가 먼 ‘믿음’이 불교인양 나타나게 되었다. 기독교도 그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메시아주의(Messiahism)에 빠지는 것처럼 이와
          유사한 양상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지점이

          진리와는 거리가 먼 ‘종교’라는 것의 본질인지도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다

          면 이는 너무나 황당한 것이리라.
           신라 하대에도 사람 사는 세상이 이런 불안한 시대로 빠져들자 결국 풍
          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 불교나 도교 등의 교설과 합쳐져 기승을 부리고 아

          예 인간의 미래를 예언한다는 도참설圖讖說까지 날뛰게 되었다. 궁예弓裔

          (857?-918)가 반란을 일으키며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하고 도참을 들고 나
          와 세상을 현혹한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런 인간의 문제
          앞에서 불교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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