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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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영은 1910년대 초부터 불교의 혁신을 주장하거나 학술적 내용을 담
          은 글을 잡지에 발표했다. 그는 종교와 철학이 어우러진 불교의 근대성에
          주목하였고 포교를 통한 중생구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삼국시대는

          태동기, 통일신라와 고려는 장성 시대, 조선은 노후 시대, 지금은 부활 시

          대’라고 평가했고, ‘이후는 이사원융을 실현하여 모든 일이 밝게 드러나는
          중차대한 시대’라고 전망했다.
           그가 불교계의 자각과 각성을 촉구한 글들은 《조선불교월보》, 《해동불

          보》, 《불일》, 《금강저》 등에 주로 수록되었다. 여기서 박한영은 당시 불교

          계의 실태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개혁과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불교의 현대적 의의와 가능성, 후속 세대의 양성을 위한 교
          육, 포교의 중요성 등을 역설했다. 한편 『계학약전』(1926)에서는 구족계를

          어겼을 때 가장 무거운 죄에 해당하는 네 바라이의 순서를 살·도·음·망

          에서 음·살·도·망으로 바꾸어 당시 교단의 풍조가 된 대처帶妻 문제에 대
          해 경각심을 일깨웠다.
           박한영은 한국불교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가졌고 자료 발굴과 정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불법이 전래된 연원, 고승과 전등의 연기, 사찰과

          탑 및 불상의 연혁, 대장경 및 목판과 금석문, 건축과 미술, 범음 등의 연
          구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중국 선종을 전공한 일본인 학자 누카리
          야 가이텐忽滑谷快天이 『조선선교사』(1930)를 쓸 때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

          교통사』(1918),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의 『이조불교』(1930)와 같은 선행 연구와

          자료를 참고하는 한편 박한영 등의 자문과 도움으로 책을 낼 수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박한영이 쓴 『불교사람요』가 남아 있다. 이는

          1930년대에 중앙불교전문학교의 교재로 쓰인 책으로 추정된다. 제목과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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