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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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유에서 제호로 변하면서 계속된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다른 변화로 넘어가는 것은 없다. 낙은 더 이상 우
          유가 아니고, 생소 역시 낙이 아니다. 이들 사이에 동일성은 없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우유 없이 낙은 없고 낙 없이 생소는

          없다. 역시 생소 없이 숙소는 존재할 수 없다. 동일한 조건을 갖추어 준다
          해도 물이나 기름과 같은 다른 어떤 것으로는 낙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우유의 질質이 좋으면 낙의 질도 좋게 된다. 우유의 질이 좋지 않으면 낙의

          질도 좋지 않게 된다. 낙은 그전 상태인 우유와 다른 것이지만 낙의 질은

          우유의 질에 좌우된다.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존재에게도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주체主體 같은 것은 없지만 생은 계속되고,
          한 생에서 만들어진 업은 다른 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붓다는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Paramārthaśūnyatā-sūtra)」에서 “눈[眼]이

          생길 때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도 가는 곳이 없다. 이와 같이 눈은 진
          실이 아니건만 생겨나고, 그렇게 생겼다가는 다시 다 소멸한다. 업보業報
          (kammavipāka)는  있지만  짓는  자[作者]는  없다.”라고  했다.  붓다고사

          (Buddhaghosa, 佛音)는 이 「제일의공경」을 인용하여 『청정도론』에서 “괴로움

          은 있지만 괴로워하는 자는 발견되지 않는다. 행위는 있지만 행위자는 발
          견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는 인정하지
          않지만, 업과 과보는 물론 윤회도 있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윤회의 주체를

          상정하지 않는 불교의 윤회설이다. 인도의 다른 종교와 철학에서는 아뜨만

          (ātman, 自我) 또는 지와(jīva, 영혼)와 같은 윤회의 주체를 인정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무아·윤회’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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