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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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도대학 조교수를 거쳐 그의 후계자로 도쿄대학에 오게 되었다. 1975
             년 퇴임 후에는 와세다대학, 국제불교학대학원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의 방대한 연구는 초기 율장으로부터 초기 대승불교, 대승경전, 대승불교

             사상, 그리고 일본불교에 이르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는 대승불교의 탄생에 관한 연구다. 『초기 대
             승불교의 연구』(1968)는 대승불교의 기원을 밝힌 것으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마에다 에운(前田慧雲)이 『대승불교사론』에

             서 이야기하듯 부파의 대중부가 모태라고 생각했다. 핵심은 불탑기원설이

             다. 경제적 기반을 가진 재가신자들을 중심으로 대승이 발생했다고 보았
             다. 석존 입멸 후 그의 유해가 모셔진 탑은 사방승물四方僧物에 속하지 않
             았다. 불법승 삼보 중에 불보에 속했다. 따라서 정사에만 사는 승려들은

             여기에 거주할 수 없다. 신자들이 보시한 재물과 함께 불탑의 관리는 재가

             신자들의 몫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불탑신앙을 중심으로 보살교단인 ‘보
             살가나(bodhisattva-gaṇa)’가 형성되고 대승불교가 흥기했다고 본다. 이후
             이에 대해 그레고리 쇼펜 등의 반론, 비판 연구를 통해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가 이렇게 대승불교 연구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초기 계율
             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된다. 『율장의 연구』(1960)가 박사학위논문이다. 원
             래는 원시불교를 연구하고자 했다. 아비다르마 연구를 위해 『대비바사론』

             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방학 중에 오오타니대학에서 퇴직한 후나하시 스

             이사이(舟橋水哉)를 만나 지도를 받았다. 그는 『구사론』을 연구했다. 그러나
             스승 미야모토는 남방불교의 계율을 연구하도록 했다.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0년대에 태국, 버마 등에 군인으로 출정한 불교학자나 일본에 유학 중

             인 사람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연구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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