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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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마음을 다잡고,
행동을 바르게 익혀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방일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법구경』에서는 “계를 감로甘露의 길이라고 하고 방
일放逸을 죽음의 길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계戒를 잘 지키는 것은 감로라
고 했고, 방일은 죽음이라고 비유했다. 여기서 감로甘露는 단이슬이라는
뜻이지만 또 다른 뜻은 불사不死를 의미한다. 따라서 계행을 잘 지키는 삶
은 죽지 않는 불사의 길이고, 방일은 곧 죽음의 길이라는 의미로 대비된다.
불사의 길로 설명하는 계행戒行은 악행을 범하지 않도록 자신을 잘 지키는
것이다. 반면 방일은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함으로 인해 악행으로 나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혼침惛沈, 마음이 가라앉아 명료한 인식을 가로막는 번뇌
혼침惛沈(styāna)은 마음을 어둡고 답답하게 만드는 작용을 말한다. 『아
비달마법온족론』에 따르면 혼침이란 “몸이 무거운 성질[身重性]과 마음이
무거운 성질[心重性],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질[不堪任性], 마음이 감당하
지 못하는 성질[心無堪任性], 몸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昏沈性],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心惛沈性]”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감임堪任’의 사전적 의미는 ‘감당하다’는 뜻이지만 불교적 의미는 마음이
경쾌하고 평온하여 유연한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가볍고 평온하면 자연
히 기분 나쁜 상황 등 역경계를 만나도 잘 감당해 낼 수 있는 유연성을 발
휘한다. 따라서 혼침이란 몸과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침울하고 혼미하
여 대상을 잘 분별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성유식론』에서도 혼침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감당하지
못함[無堪任]을 본성으로 하고, 경안과 위빠사나를 장애하는 작용이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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