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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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보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진짜 그 유명한 육조대사의 두
골이 여기에 봉안되어 있을까 하는 점이다. 고려시대 각훈覺訓(?-1230경) 화
상이 쓴 것으로 전하는 「육조혜능대사정상동래연기六祖惠慧大師頂相東來緣
起」 에 의하면, 그 얘기는 이렇게 되어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오늘날 전남 영암靈巖 지역인 낭주군朗州郡에 있는 운암
사雲巖寺 승려인 삼법화상이 육조대사가 입적한 이후 그 사실을 전해 듣고
평생 소원인 육조대사의 친견을 이루지 못했다고 통탄을 했다. 그런데 당
시 오늘날 익산益山인 금마국金馬國 미륵사彌勒寺의 승려인 규정圭晶이 도당
유학 후 가져온 『법보단경法寶壇經』의 초본을 한 권 얻어 읽다가 육조대사
가 자신이 죽은 후 5,6년이 지나면 누가 와서 내 머리를 가지고 갈 것이라
고 했다는 예언적인 구절을 읽고, ‘드디어 내가 이를 가져와 공덕을 지어야
겠다’고 결심하고 영묘사靈妙寺에서 비구니 스님으로 수도하고 있는 김유
신金庾信(595-673) 장군의 부인 법정法淨(?-?) 스님에게 말하니, 법정스님이
쾌히 동의하고 집안 재산을 털어 2만금을 주었다. 그래서 삼법화상은 성
덕왕聖德王(702-737) 20년(당 현종 10년) 5월에 장삿배를 타고 당나라로 들어
가 육조대사가 주석한 소주韶州 보림사寶林寺에 도착하였다.
그는 그곳에 머물며 온갖 방안을 궁리하던 중 인근 홍주洪州 개원사開元
寺 보현원普賢院에 머물고 있는 신라 백률사栢栗寺의 승려 대비大悲 화상을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하니, 그도 생각이 같다고 하며 개원사에 머물고 있는
당나라 여주 출신 장정만張淨滿이라는 사람이 담력이 있고 믿을 만하다고
하며, 이 사람을 통해 보림사의 육조탑에 봉안된 육조의 정상을 빼오게 하
는 것에 의기투합이 되었다. 마침 장정만이 부모상을 당하자 이에 1만금을
보내 먼저 위로하고 상을 치르고 온 후 그에게 계획을 말하니, 고마운 은
혜를 갚겠다며 기꺼이 8월 1일 밤중에 보림사로 들어가 육조대사의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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