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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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한 게 있다고 은근히 내세우는 게 아니라 정말로 한 게 없다고 말하
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으니 임종게를 남길 이유도 없다고
말하며, 그가 남긴 말은 “모두들 잘 있게.”라는 한마디입니다. 그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진중珍重’의 속뜻은 몸을 아끼라는 말입니다. 편지의 마지막에, 또는 사
람과 헤어질 때 관용구처럼 쓰는 말입니다. 죽음을 그저 이웃집 가듯이 편
안하게 받아들인 평상심의 경지가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임제종과 달리 묵조선의 제창자이자 조동종에서 널리 읽힌 『송고백칙頌
5)
古百則』 의 저자 천동정각(1091-1157)은 이런 임종게를 남겼습니다.
꿈같고 환영 같은
육십칠 년이여
흰 새 날아가고 물안개 걷히니
가을물이 하늘에 닿았네. 6)
역대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임종게입니다. 원오극근이 ‘이철무공’
으로 자신의 평생을 술회하고 있다면 천동정각은 ‘몽환공화夢幻空花’로 67
년 세월을 회고합니다. 천동정각의 임종게가 원오극근과 다른 것은 문학
적 이미지를 내세워 은유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이 세상 인연을 떠나가면서 보여주는 것은 같지만 표현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원오극근이 ‘모두들 잘 있게’라는 말로 담담함을 보여주
5) 천동정각의 『송고백칙頌古百則』은 1세기 후 만송행수(1190-1246)가 시중示衆·착어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종용록』으로 편찬하여 『벽암록』과 함께 선서禪書의 쌍벽을 이루게 된다.
6) 『굉지선사광록宏智禪師廣錄』, “夢幻空花, 六十七年, 白鳥煙沒, 秋水天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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