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P. 84

자로 내려와 짚신을 만들어 보시
                                           하면서 3년을 또 수행하였다.
                                             그는 이런 수행을 하면서도 고국

                                           을 잊을 수 없다고 하며 830년(흥덕

                                           왕  5)에  귀국하여  상주尙州  노악
                                           산露岳山 장백사長栢寺에서 주석하
                                           며 선을 펼쳤다. 높은 도덕과 법력

                                           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조금 넉넉
                                           한 강주 지리산으로 내려갔는데,
                                           그때 호랑이들이 나와 길을 인도

                                           하였고, 맹수들이 머무르는 곳에

                                           가니 동굴의 석문이 있어 그곳 화
          사진 1. 진감선사비.
                                           개곡花開谷에 옛날 삼법화상이 세

          운 절의 터가 남아 있어 여기에 당우를 마련하였다. 838년 민애왕閔哀王
          (838-839)이 갑자기 보위에 올라 부처의 자비에 깊이 의탁하고자 하여 국

          서를 내리고 재를 지낼 비용을 보내 발원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에 선사
          는 “부지런히 선정을 닦으면 될 뿐, 발원할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하고
          응대하였다. 민애왕은 선사의 가르침에 깨달은 바 있어 혜소慧昭라는 호를

          내리고, 그 절을 대황룡사大皇龍寺에 적을 두게 하였다.

           여러 차례 왕이 왕경으로 오기를 초빙하여도 꿈적도 하지 않고 수행에
          열중하였다. 홈을 판 대나무를 가로질러 절 주위에 시냇물을 끌어다가 사
          방으로 물을 대고, 절의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고 지었다. 선사는 법통을

          세우고자 조계의 현손임을 분명히 하고 6조의 영당影堂을 세우고 흰 벽을



          82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