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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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평정되었음을 축하하는 사신을 당
                                      나라로 보냈다. 그런데 비석을 세우기도
                                      전에 헌강왕이 평소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던 황룡사皇龍寺의 백고좌회百高座會의

                                      효험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 헌강왕
                                      의 동생인 정강왕定康王(재위 886-887)이
                                      선왕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를 계승하

                                      여 추진하였다. 이때 정강왕이 인근에도

                                      옥천사라는 절이 있어 사람들이 서로 혼
                                      동하므로 절을 둘러싸고 흐르는 계곡의
                                      시냇물이 합쳐지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보고받고 옥천사를 쌍계사雙溪寺로 이름

                                      을 바꾸도록 하였다. 그리고 최치원 선
          사진 3. 우세남의 공자묘당비.
                                      생에게 비문을 지을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탑비의 비문을 최치원 선생이 짓고 또 붓을 들어 글씨도 직접 썼

          다. 비는 888년(정강왕 2) 7월에 건립되었다. 그해에 정강왕은 황룡사의 백

          고좌회에 몸소 참석하기도 하고, 한주漢州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찬伊湌 김
          요金蕘를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기도 하였으나, 5월에 병이 들어 결국 여동
          생인 만曼에게 왕위를 선양하고 죽었다. 헌강왕처럼 보리사菩提寺의 동남

          쪽에 묻혔다. 이 여동생이 진성여왕眞聖女王(재위 887-897)이다.

           진감선사비는 귀부龜趺, 비신, 이수螭首 형태의 덮개돌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탑비의 높이는 363㎝이고, 덮개돌의 전면 중앙에 사각형으로 깊이
          판 제액에 ‘양해동고진감선사비敭海東故眞鑑禪師碑’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의

          글자는 2,423자이다. 승려 환영奐榮이 비문의 글씨를 비석에 새겼다(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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