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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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 만 마디 말이 다 꿈속에서 꿈을 설함입니다. 모든 불조佛祖가 나를 속
          인 것입니다.” 하니, 운봉선사가 크게 기뻐하며 향곡香谷이라는 법호와 전
          법게를 지어 주셨다. 이때가 1941년 8월이었다. 이리하여 향곡스님은 29

          세에 운봉선사로부터 전법 인가를 받았는데, 그 법맥은 고려시대에 임제

          종 석옥청공선사의 법맥을 이어 온 태고보우국사에서 근세 경허 - 혜월
          선사의 임제 정맥을 이은 것이다.



            1947년 봉암사 결사와 향곡스님의 확철대오



           향곡스님의 스승
          운봉선사는 1943년

          에 당시 부산 동래

          의  윤금륜월  보살
          이 시주한  기장 해
          변 임야 3만평에 선

          원을  세우니,  이것

          이  묘관음사다.  창
                             사진 2.  묘관음사 조실 향곡스님.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묘관음사의
          건주  윤금륜월  보             길상선원.
          살은  독실한  불자

          로 운봉스님의 법문을 듣고 참선 수행을 했는데, 향곡스님과 성철스님, 그

          리고 진제스님도 시봉한 대공덕주였다. 향곡스님은 조실로 계시던 운봉선
          사가 입적하시자 묘관음사에 주석하게 되었다.
           1947년 가을에 성철스님으로부터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며 봉암사

          결사에 동참하라는 연락이 왔다. 향곡스님과 성철스님은 임자(1912)생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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