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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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대시키고 있다. 이상은 세 가지 배움[삼학]을 교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삼학은 수행의 체계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는
             수행을 통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학은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자가 반드시 닦아

             야 할 세 가지 수행을 의미한다.
               초기불교의 수행은 삼학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삼학은 세발솥[三鼎足]
             과 같아서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똑바로 서지 못한다. 대승불교도 마찬

             가지다. 만일 삼학의 수행체계 외에 별도의 수행방법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불설佛說이 아니라 외도外道의 마설魔說에 불과하다. 붓다는 초기경
             전의 여러 곳에서 삼학을 순서대로 수행하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열반
             을 증득할 수 있다고 설했다. 반대로 삼학을 순서대로 닦지 않으면 열반을

             증득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계정혜 삼학의 관계



               「Mahāparinibbāna-sutta, (大般涅槃經)」(DN16)에서 붓다는 계·정·혜

             삼학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했다. “이러한 계·정·혜가 있다. 지계의
             실천을 통해 선정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선정의 실천을 통해 지혜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지혜의 실천을 통해 마음은 번뇌(āsava), 즉 욕루欲漏
             (kammāsavā),  유루有漏(bhavāsavā),  견루見漏(diṭṭhāsavā),  무명루無明漏

             (avijjāsavā)로부터 해탈하게 된다.”(DN.Ⅱ.81) 욕루欲漏는 감각적 욕망에 기
             인한 번뇌이고, 유루有漏는 존재에 기인한 번뇌이며, 견루見漏는 사견邪
             見에 기인한 번뇌이고, 무명루無明漏는 어리석음에 기인한 번뇌이다.

               이 경에 대응하는 『장아함경』 제2권 제2경 「유행경遊行經」에서도 같은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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