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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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철학자인  이노우
             에 엔료井上圓了가 1887년
             에 세운 철학관이 그 전신

             이다.  도요대  재학  시절

             조선불교청년회에서  활
             동했는데, 1921년 여름 방
             학 때는 청년회에서 조직

             한 전조선 순회 강연단의

             일원으로 들어왔다. 그는
             경남  진주의  제일공립보
             통학교에서 ‘종교와 문화

             적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사진 1, 2. 일본 도요대학.
             강연했다가  불온사상  선
             전 혐의로 적발되어 구금되는 일을 당했다. 이때 도쿄제대 학생이었던 이
             영재李英宰와 함께 공판에 붙여졌고, 공산주의 사상을 소개했다는 죄목으

             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23년에 김경주는 대학을 졸업하

             고 귀국하여 범어사 부설 명정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그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전반까지 잡지와 신문에 활발히 글
             을 기고했다. 불교계의 대표적 잡지였던 『불교』에 게재한 글들을 소개하면,

             「화엄철학의 내용」(40·42·45호, 1927), 「현하 세계의 불교 대세와 불타 일생

             의 연대 고찰」(75·77·78호, 1930), 「불타의 성탄을 추억함」(84호, 1931), 「종교
             의 본질과 철학의 극치」(86호, 1931), 「세계 종교의 정수」(87·88호, 1931), 「불타
             의 처세훈」(91·93호, 1932), 「불타의 세계관」(96호, 1932), 「승려의 생활 문제」

             (100호, 1932), 「아육왕과 그의 제자 상부후의 공적」(103호, 1932) 등 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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