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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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신불교』에는 「지나불교의 법난」(22
                                      호, 1940), 『금강산』에는 「불교의 특색」(4
                                      호, 1935), 「불교의 여성관」(9-10호, 1935)이

                                      실렸다. 이 밖에도 《동아일보》에 〈수송

                                      동 각황사: 아육왕과 그의 불교상의 불
                                      후의 공적〉(1932. 11. 6), 〈각황사: 불교의
                                      근본 교의〉(1934. 3. 11) 등이 게재되었다.

                                        김경주는 1931년에 중앙불교전문학교

                                      의 강사가 되었고, 1934년에는 학감을
          사진 3. 중앙불전교우회지 『일광』.
                                      거쳐 1938년 말에 교장으로 부임했다.
          이 시기에 중앙불전 교우회에서 내는 『일광』의 발행에도 관여했다. 이 잡

          지는 1928년 12월 창간호가 나온 이래 1940년 1월의 통권 10호까지 간행

          되었는데, 편집 겸 발행인은 교장이자 교우회 회장을 맡은 송종헌, 김영수,
          박한영, 김경주가 차례로 담당했다.
           그런데 총독부의 방침에 의해 중앙불전은 1940년에 혜화 전문학교로 교

          명을 변경하고 6월 경성제대 교수 출신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가 초대 교

          장으로 취임했다. 앞서 5월에 열린 조선불교 중앙교무원 임시 이사회에서
          는 중앙불전 교장 추천과 교명 변경 및 학과 증설에 관한 건을 논의했다.
          이때 다카하시가 교장으로 추대되고, 교명은 혜화전문학교로 정했으며,

          흥아과를 증설하기로 했다. 다카하시는 교장이 되자마자 박한영, 권상로,

          김영수 등 한국인 교수와 강사 상당수를 파면했다. 이때 김경주도 교장을
          그만두고 교수직에서도 물러나, 경북 5본산이 공동으로 설립한 5산 불교
          학교의 교장으로 갔다. 이후 해방을 5개월 앞둔 1945년 3월에 범어사 주

          지가 되었지만 이후 특기할 만한 행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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