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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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또 현상과 실재의 구분을 벗어나 현상이 곧 실재라는 ‘현상즉실재론’
을 화엄, 그 중에서도 ‘성기性起’ 사상에 적용했다. 이에 대해 “전통 불교의
일부였던 화엄 사유를 ‘근대적 보편철학’으로 재해석했다.”고 평가한 논문
도 있다.
다음으로는 1934년 7월 8일부터 7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
선불교와 문화〉에 대해 살펴본다. 그는 서론에서 “문화란 것은 주어진 자
연의 사실을 일정한 표준에 비추어 지배하고 형성하며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 이상을 실현하려는 과정의 총칭이다.”라고 정의했다. 이어서 “불교는
조선문화의 태양으로 생명과 발전을 주었다. 삼국 이래 조선까지 사회와
문화에서는 불교가 중심이었다.”고 주장하며, 예술과 전적, 한글과 문학,
사상, 음악 풍속 언어 등 일반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불교가 미친 영향이 매
우 컸다고 보고 있다.
1장 ‘문화유통의 인물과 불교도’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중국과 서역에 유
학한 승려들을 기술했다. 고구려의 승랑, 신라의 의상과 원측, 고려의 의
천은 물론이고 각훈의 『해동고승전』에 나오는 아리야발마, 혜업, 현태 등
인도에 간 유학승들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선진 문화의 유입 통로였던 외
국으로의 유학은 승려가 그 효시라고 하면서, 고구려에서 승려 의연을 중
국에 파견하여 석존의 일생의 행적을 묻고 배우게 했음을 들었다. 이는 고
구려 평원왕이 576년 의연을 중국에 보내 법상에게 부처의 열반과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해가 언제인지 등을 배워오게 한 일을 말한다.
2장 ‘조선의 예술에 대한 불교의 지위’는 주로 석굴암을 다룬 것으로 동
서고금의 불교예술이 집대성된 공간이라고 평했다. 3장 ‘조선의 전적과 불
교’에서는 원효의 저술, 고려대장경과 활판 기술에 주목했고, 4장 ‘한글과
불교’에서는 가장 완전한 표음문자인 한글의 기원을 실담자, 범서, 이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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