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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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조동종의 종단 연구생으
             로 선발되면서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
             는 유명한 니쇼二松학사에서 한학을 깊이 공부했다.

             니쇼학사는 미시마 츄슈三島中洲가 1877년에 설립

             한 한학 전문학교였는데, 미시마는 메이지시대 3대
             학장으로 일컬어지는 한학자이자 법학자로서 도쿄
             제대 교수도 지냈다.

               가와무라는 이후 포교사로 한국에 와서 각지의

             사찰과 포교소에서 활동했다. 1928년 10월 이후 함
             경남도 함흥과 흥남에 기반을 두고 포교를 했고, 경
                                                            사진 1.  가와무라  도키의
             성불교전수학교의 강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1935                         유고를  바탕으로
                                                                 출간된  『조선불교
             년 8월부터는 대전 포교소의 주지로 있었다. 그는                         사』 1·2.

             끝으로 부산에 정착했다가 1945년 8월 해방 후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주석할 사찰을 찾으려 했지만 해외에서 막 귀국한 승
             려들이 많았던 탓에 쉽게 구하지 못했다. 그러다 친구 승려의 소개로 후쿠

             오카 인근의 작은 사찰인 다이지지大慈寺의 주지를 맡게 되었다. 이후 그는

             포교사로서의 실적을 인정받아 여러 곳에서 초빙을 받기도 했지만 다이지
             지에 머물며 오로지 한국불교 연구에 전념하다가 1988년 11월 1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불교사 - 자료편』의 간행


               『朝鮮佛教史: 河村道器和尚遺稿 資料編』(大阪 楞伽林) 1-2권은 그의 사후

             인 1995년 3월에 유고집으로 출간되었다. 1권(1~11편)과 2권(12~23편)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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