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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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류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SA.Ⅰ.19-20) 다시 말해 붓
다는 번뇌, 갈애, 사견(상견과 단견)은 물론 게으름과 들뜸, 쾌락의 탐닉과
자기 학대에 몰두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거센 물결을 건널 수 있게 되
었다는 것이다.
「오가 숫따」(SN1:1)에 대응하는 한역은 『잡아함경』 제48권 제1267경 「도류
경度流經」이다. 이 경에 따르면 어떤 천자天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
시여, 비구들이 사나운 흐름[駛流]을 건넜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천자여.” 천자가 다시 여쭈었다. “인연에 이끌림[攀緣]도 없고 또 머
묾도 없이 사나운 흐름을 건넜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천자여.” 천자가 다시 여쭈었다. “인연에 끌림도 없고 또 머묾도 없이 사나
운 흐름을 건넌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러이러하게 끌어안고[抱], 이러이러하게 올곧게 바로 나아가면 물에 떠
내려가지 않으며, 이러이러하게 끌어안지 않고 이러이러하게 올곧게 바로
나아가지 않으면 곧 물에 떠내려가고 만다. 천자여, 이것을 인연에 이끌림
도 없고 또 머묾도 없이 사나운 흐름을 건너는 것이니라.” (T2, p.348b)
이 경에서는 “인연에 이끌림도 없고 또 머묾도 없이 사나운 흐름[駛流]을
건넜다[無所攀緣, 亦無所住, 而度駛流].”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한 ‘사나운 흐
름[駛流]’이란 네 가지 폭류暴流, 즉 욕류欲流·유류有流·견류見流·무명
류無明流를 가리킨다.
한편 인도의 승려 하리발마訶梨跋摩(Harivarman, 250~350년경)가 저술한
『성실론(成實論, Satyasiddhi-śāstra)』에도 ‘네 가지 흐름[四流]’에 관해 언급하
고 있다. 『성실론』에서는 사류四流 중에서 삼계의 견혹見惑인 견류見流를 가
장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삼계의 견혹으로 인해 생사유
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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