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P. 129
『성실론』에 따르면 “이른바 중생은 세 가지 번뇌[三惑: 見思惑·塵沙惑·無
明惑]로 말미암아 유전流轉하며, 삼계三界에 정처 없이 떠돌기 때문에 되돌
아올 수 없다. 또한 ‘네 가지 거친 하천[四暴河]’이라고도 한다. 그 혹업惑
業으로써 거센 폭류로 하천을 형성하여 흐르는 중생을 빠뜨린다. 또한 ‘네
가지 멍에[四軛]’라고도 하는데, 중생은 혹업에 얽매인다. 만약 소의 멍에가
마차에 묶이게 되면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釋一如, 『三藏法數』, p.174ab)
붓다가 네 가지 흐름[四流]을 언급한 것은 그것을 벗어난 네 가지 즐거움
[四樂]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증일아함경』 제23권에 이렇게 설해
져 있다. “만일 범부凡夫가 네 가지 흐름에 대한 설법을 듣지 못하면 그는
네 가지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휴식하
는 즐거움[休息樂], 바르게 깨닫는 즐거움[正覺樂], 사문의 즐거움[沙門樂], 열
반의 즐거움[涅槃樂]이다. 만일 범부가 이 네 가지 흐름을 알지 못하면 그는
이 네 가지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T2, p.672c)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