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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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행사는 도리어 “여릉의 쌀값은 얼마인
                                    가?” 라고 물었다. 이는 유명한 ‘여릉의
                                        2)
                                    쌀값’이라는 공안公案이다. 이에 대한 해

                                    석은 결코 중요하지 않지만, 결국은 학인

                                    에게 ‘돈오’에 이를 것을 강조하는 대화라
                                    고 하겠다. 행사의 행화는 비록 “당시 행사
                                    의 문하에는 학인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3)

                                    라고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제자는 희천希

                                    遷 한 사람뿐이며, 그에 따라 행사는 “여러
          사진 2. 청원행사 선사.
                                    제자들이 비록 많다고 하지만, 기린 하나
          면 족하다.” 라고 하였다.
                   4)



            석두희천의 석두종石頭宗



           석두희천石頭希遷(700∼790)은 속성이 진陳이고 단주端州 고요高要(현 廣東
          省 高要縣) 출신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조계에 이르러 혜능 문하에서 사미沙

          彌가 되었으며, 혜능이 입적하면서 행사를 찾아가라고 하여 강서로 가서
          행사를 찾았다. 그와 행사가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었다고 전
          해진다.




              행사가 “너는 어디서 왔는가?”라고 묻자, 희천은 “조계에서 왔습니



          2)  앞의 책(大正藏51, 240c), “廬陵米作麽價?”
          3)  [宋]贊寧撰, 『宋高僧傳』 卷9(大正藏50, 764a), “當時思公之門, 學者麏至.”
          4)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5(大正藏51, 240a), “衆角雖多, 一麟足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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