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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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까지 옮겨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윤 석장에게 맡기고
          올해 구정 지나 동안거 해제 후에 만나서는 “매년 음력 3월 6일에는 성철
          스님문도회 신도 1천여 명이 겁외사 경호강 방생터에 모여 전국방생법회

          를 개최합니다. 코로나로 미뤄 왔는데 올해는 양력 4월 6일에 개최하고자

          하니 그날 제막식을 올렸으면 합니다.”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밖으로 벌여 놓은 일이 한둘이 아닌데 목구멍으로 물 한 모금 넘
          기지 못하고 병실에서 의료적 치료만 받고 있으려니 답답하기 그지없었습

          니다. 처음에는 치료에 집중하느라 다른 데 정신을 팔 여가가 없었는데 입

          원한 지 20여 일이 지나 몸 상태가 안정권에 들자 정신도 맑아 오기 시작
          하는데, 병실에서 속절없이 24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또 얼마나 힘들고 무
          거운 짐이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 급성 폐렴으로 이

          곳에 입원하셨을 때는 “똑같다 똑같다” 하시며 화두 삼매에 들어계셨다면

          출가 후 이날 이때껏 큰스님을 가슴에 모시고 산 소납으로서는 큰스님 가
          르침을 현창顯彰하는 일이 화두인데 바깥에서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 상의
          도 할 수 없고 지시도 할 수 없으니 속만 타들어 갔습니다. 답답함과 초조

          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윤 석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성철 종정 예하의 통일기원비가 완성되었는데 언제쯤 세울까요?”
           그때는 병세에도 차도가 있고 ‘4월 20일쯤이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
          는 암시도 있어서 “20일에 세우고 21일에 스님들이 모여 회향합시다.”라

          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일 퇴원은 언감생심에 불과했습니다. 몸

          은 제 마음과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윤 석장은 약속대로 겁외사에 가서 기
          단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고 20일 비를 세웠고, 21일에는 소납 대신 맏상좌
          일봉스님이 주관하여 간소하게 회향식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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