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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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초반에 창호지 행상을 하던 일, 14세 때 출가하여 어렵게 불법을 공
             부하던 일, 마침내 강사가 되어 많은 후학에게 설법하던 일들이 주마등처
             럼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지내놓고 보니 한갓 물거품처럼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홀연 깨달았을 때, 범해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범부들은

             이처럼 ‘이크’하고 깨닫는 순간을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인생을 통찰한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의 일생은 덧없는 것이고 꿈과 같
             으며 물거품과 같다고 거듭거듭 말해 왔습니다.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에도

             “이 세상의 모든 일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

                                      2)
             고, 이슬이나 번개와도 같다.” 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물거품처
             럼 사라져버린다는 말입니다.
               일본의 가모노 초메이(1155~1216)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집도 주인도 아침 이슬 속에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금방 사라질 것
                  이다…… 배 한 척이 지나간 뒤에 하얀 파도가 잠깐 나타났다 사라
                  지는 것처럼 나 자신의 짧은 생애도 그런 것이 아닐지.”              3)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깨닫는 것
             입니다.  깨닫는 것은 인생이란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
                    4)
             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본원적 슬픔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안

             다는 것, 깨닫는다는 것은 슬픈 것이고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슬프고 괴롭지만 인생은 덧없다는 사실을 앎으로써 비로소 지금 살아 있



             2)  『金剛經』.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3)  鴨長明, 『方丈記』, 1212.
             4)  우드펜스키, 『위대한 가르침을 찾아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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