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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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었던 것 같으나 현재
                                                 는 진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청량산을 유람한 주세붕

                                                 선생은  김생굴金生窟을(사진
                                                 5) 답사한 글을 쓸 때 자신
                                                 이  김생의  서첩을  가지고

                                                 있는데  김생굴에  와서  보

                                                 니  김생의  필체가  청량산
                                                 의  빼어난  바위들을  닮아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감회

                                                 를 남겼다. 미수眉叟 허목許

                                                 穆(1595~1682)  선생은  그의
                                                 「청량산유람기」에서는 김생에
          사진 7. 갈라산 문필봉.
                                                 대한 언급을 남기지 않았지

          만, 시랑侍郞 허옥여許沃汝가 소장하고 있는 김생의 진적을 본 적이 있다고 쓴

          글을 남겼다. 1821년 청량산을 유람하며 김생굴을 들러본 적이 있는 사진士珍
          이해덕李海德(1779~1858) 선생은 승려들이 보여준 김생의 진적 2첩을 보았던
          사실을 유람기에 적고 있다. 각각 금분金粉과 은분銀粉으로 쓴 작은 글씨였

          는데, 서첩에는 작은 부처를 여럿 그려 놓았다고 적어 놓고 있다. 현재는

          김생의 진적이 없기에 한국 서예사에서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序’의 탑본
          과 이 낭공대사탑비의 탑본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사진 6).

           안동의 갈라산葛蘿山에는 김생이 글씨 연습을 했다고 하여 문필봉文筆
          峰이라고 부르는 봉우리가 있고(사진 7), 봉화의 청량산에는 현재의 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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