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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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淸凉寺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면 자소봉紫宵峰 아래에 김생이 글씨 공부
             를 했다는 김생굴과 김생폭포가 있다. 김생은 80세에 이르기까지 글씨 공
             부를 하였다니 글씨를 수행하듯이 썼는지도 모른다. 퇴계선생은 청량산을

             유람하고 이곳을 들러본 다음 ‘김생굴’이라는 시를 남겼다(사진 8).



                  蒼籒鍾王古莫陣창주종왕고막진
                  옛 글씨나 종요 왕희지 글씨만 쫓지 말지니

                  吾東千載挺生身오동천재정생신

                  천년 만에 해동에도 뛰어난 이 태어났도다
                  怪奇筆法留巖瀑괴기필법유암폭
                  특출한 필법은 바위 폭포에 남아 있는데

                  咄咄應無歎逼人돌돌응무탄핍인

                  그 뒤를 이를 사람 없어 이를 슬퍼하노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주목에 있는 김생사金生寺를 김생이 머무르

             며 불교 수행을 한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불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

             는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1977년에는 대청댐 수몰지구 유적조사반이 충
             북 청원군 문의면 덕유리에서 무명의 사지를 발굴하다가 ‘김생사’, ‘태평흥
             국’, ‘강당초’ 등의 글씨가 새겨진 기왓장을 발견하면서 김생사의 옛터가 발

             견되었다. 현재 충주시는 금가면 김생로 325(유송리)의 부지를 김생사터로

             비정하고 있다. 고려시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선생도 김생사
             로 돌아가는 승려에게 송별시를 지어보냈다.



                  縹緲金生寺표묘김생사   파르스럼히 아득한 저 먼 김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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