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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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가? “그들이 오락을 위해서 음식을 먹고, 취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고, 장
식을 위해서 음식을 먹고, 꾸미기 위해서 음식을 먹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죽지 않고 사막을 건너기 위해 음식을 먹었을 뿐이
다. 그와 같이 단식을 철저히 알 때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을 여의게 된
다. 그러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그런 족쇄가 없어진다. (SN.Ⅱ.98-99)
둘째, 감각접촉의 음식[觸食]은 마치 죽은 소가 생물들에게 뜯어 먹히는
것과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감각접촉의 음식을 철저히 알 때 세
가지 느낌을 철저히 알게 되고, 세 가지 느낌을 알 때 성스러운 제자가 더
이상해야 할 바가 없게 된다. (SN.Ⅱ.99)
셋째, 마음의 의도의 음식[意思食]은 힘센 두 남자에게 양손이 붙잡힌 채
숯불 구덩이로 끌려가는 것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의도
의 음식을 철저히 알 때 세 가지 갈애를 철저히 알게 되고, 세 가지 갈애를
철저히 알 때 성스러운 제자가 더 이상해야 할 바가 없게 된다. (SN.Ⅱ.99) 세
가지 갈애란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kāma- taņhā, 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
(bhava-taņhā, 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vibhava-taņhā, 無有愛)를 말
한다. 이 갈애는 의사식의 뿌리이기 때문에 갈애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넷째, 알음알이의 음식[識食]은 도둑을 잡아 아침에 백 개의 창으로 찌르
고, 한낮에 백 개의 창으로 찌르고, 해거름에 백 개의 창으로 찌를 때의 고
통과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알음알이의 음식을 철저히 알 때 정신·
물질[名色]을 철저히 알게 되고, 정신·물질을 철저히 알 때 성스러운 제자
가 더 이상해야 할 바가 없게 된다. (SN.Ⅱ.100) 다시 말해 알음알이를 철저
히 알게 되면 정신·물질을 철저히 알게 된다. 정신·물질은 알음알이에
뿌리를 두고 있고 알음알이와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알음알이라는
음식을 통해서도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다고 한다. (SA.ii.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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