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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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창한 것도 역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의 법
을 사사한 양숙梁肅(753∼793)은 바로 ‘고문운동’을 제창하였으며, 나아가
천태학을 통한 ‘유불융합’을 제창하였다.
혜충이 『단경』의 입장에서 북종과 천태, 화엄을 융합하고자 했음은 바로
위의 인용문에서 『화엄경』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으로부터도 추정할 수 있
다. 북종과 남종의 가장 극명한 차별은 바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일
심이문一心二門’의 입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신수神秀의 북종선은
철저하게 『기신론』의 ‘심진여心眞如’와 ‘심생멸心生滅’의 이문二門을 원용하
여 ‘염불기念不起’를 통한 ‘이념離念’을 강조하고 있는데, 『단경』에서는 이를
철저하게 배척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기신론』은 바로 화엄종의 논리와 입장을 밝힌 논서이다.
『단경』으로부터 출발한 조사선은 ‘불성’의 이해에 있어서 화엄의 ‘성기性起’
를 배척하고 있고, 나아가 천태의 ‘성구性具’와도 차별이 있지만, 동산법문
을 개창한 도신道信선사는 바로 천태학으로부터 선사상을 도출하였기 때
문에 비교적 ‘성구’의 입장이 농후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화엄경』을 인
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다양한 사상을 ‘융합’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혜능의 제자인 혜충국사로부터 ‘무정불성’과 ‘무정설법’이 제
창되면서 점차 남종선에 ‘무정불성’이 승인되기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이
른바 ‘회창법란會昌法亂’이라는 전체적인 중국불교의 흐름을 바꾸는 중대한
사건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이어서 ‘회창법란’의 발생과 조사선의
불성론이 어떻게 변용하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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