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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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에 들어와서는 이름을 최언위崔彦撝로 바꾸어 활동하였다.
그는 나말여초羅末麗初에 활동했던 선사들의 비문을 가장 많이 지은 것
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존하는 신라 선사들의 탑비 10기 중 최치원 선생이
4개의 비문을 짓고 최인연 선생이 3개의 비문을 지었고, 고려에 들어와서
는 70세 노구를 이끌고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세워진 9기의 선사들의 탑
비 가운데 8기의 탑비 비문을 직접 지었다.
그가 지은 비문으로는 「흥녕사 징효대사보인탑비興寧寺澄曉大師寶印塔
碑」-신라, 「태자사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郞空大師白月栖雲塔碑」-신라,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신라,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無爲寺先覺大師遍光塔碑」, 「법경대사자등지탑비法鏡大師慈燈
之塔碑」, 「보리사 대경대사현기탑비菩提寺大鏡大師玄機塔碑」, 「보현사 지장선
원낭원대사오진탑비普賢寺地藏禪院朗圓大師悟眞塔碑」, 「광조사 진철대사보월
승공탑비廣照寺眞澈大師寶月乘空塔碑」,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
師普法塔碑」,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鳴鳳寺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
碑」, 「정토사 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등이 있다. 글씨도 최
치원 선생처럼 잘 썼는데, 그가 쓴 글씨로는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
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의 전액篆額과 최치원 선생이 비문을 지은 「성
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郞慧和尙白月葆光塔碑」의 글씨 등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진적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사진 2).
그는 최치원, 최승우崔承祐(?~?)와 함께 통일신라 말기의 ‘삼최三崔’로 일
컬어졌고, 집안은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장남 최광윤崔光胤(?~?)도 문장
이 뛰어나서 중국에서 과거에 합격하였다고 전한다.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아버지와 아들 모두 중국에서 과거에 합격한 예는 현전現傳하는 기록상 최
인연 부자가 유일하다. 셋째 아들인 최광원崔光遠(?~?)의 아들인 최항崔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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