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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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 특히 인도불교가 중국에 도입되어 중국불교로 완성되기까지의 변화
과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시기인 한대부터 위진남북조 시대를 검토하고
이를 역사 실증적으로 증명해 낸 명저라고 할 수 있다.
『사십이장경』의 후대 개찬설 제시
탕용동은 한명제의 영평구법설
을 전하고 있는 『사십이장경』이 후
대에 개찬되었다는 새로운 설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당시 저명한
계몽사상가인 양계초의 학설과 대
응되는 것으로, 탕용동의 실증주
사진 1.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의적 역사관이 잘 나타난 예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양계초는 『장방록』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십이장경』이 산스크리트
원본이 있어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 『효경』, 『도덕경』 등에 근거하
여 편찬한 일종의 위서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탕용동은 『장방록』 안
에 “외국의 경전을 초록한 것”이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중국의 편찬서는 아
니라고 판단하였다. 오늘날 존재하는 팔리어 불경을 보아도 『효경』 같은 문
체가 적지 않다는 점도 한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둘째, 양계초가 『사십이장경』을 위서僞書라고 본 이유는 번역 문체답지
않게 그 문장이 우아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번역에는
번역 문체가 있기 마련이고, 번역자는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 문체를 희생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탕용동은 『사십이장경』에 한나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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