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P. 155
제로 불교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처음에 북방의 불도징을 따라서 공부하
였고, 나중에는 북방의 구마라집이 도안을 따랐고 남방의 혜원은 실제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도안 법사는 불교의 전파와 경전 번역, 교리
발명, 불교 규범의 개정, 경전 보존 등에서 큰 공적이 있었다. 역경의 규모
와 인재 양성에서 구마라집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였다는 점에
서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도안의 사상은 처음에는 ‘격의불교’에 해당하였지만, 『도덕경』, 『장자』 등
을 불교와 견강부회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보고 대승불교, 즉 ‘본의
불교’로 가는 길을 열었다. “경전의 뜻이 명확해진 것으로 도안에서 시작
되었다”는 것이 탕용동의 평가이다. 도안은 여러 경전들을 수집해서 『종리
중경목록』을 지었는데, 경전의 판본을 직접 본 것만 목록에 넣었다고 한다.
또한 미륵사상을 받아들여 후대에 사람들은 그를 미륵사상의 시조라고 인
정하였다. 한 나라 이후 선불교와 반야학으로 나뉘어 간 불교를 도안이 두
계통을 집대성하였고, 탕용동이 이를 역사적, 사상적으로 고증하였던 것
이다.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