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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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유의 부친인 이길보李吉甫(758~814)는 청량징관淸凉澄觀이 『화엄정
             요華嚴正要』 1권을 찬술해 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지만, 그도 안사의 난 이
             후에는 우두종의 법흠法欽에게 귀의했으며, 입적한 후 비문을 찬술하였다.

             이러한 부친의 영향으로 이덕유 역시 우두선에 귀의하였다.

               이덕유는 태화太和 3년(829) 검교예부상서檢校禮部尙書의 직위에 있으면
             서 20만 전錢을 보시해 남경南京에 법융法融의 새로운 탑을 건립했고, 유우
             석劉禹錫에게 『우두산제일조융대사탑기牛頭山第一祖融大師塔記』의 찬술을 청

             했는데, 이 『탑기』에서는 이화가 설정한 도신-법융의 법맥을 그대로 사용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후대에 우두선이 선종의 정맥으로 기술되고 있으니,
             이화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탑기』에는 이덕유
             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가가 실려 있다.




                  “(이덕유는) 이치를 숭상하고, 옛것을 믿으며, 유학儒學과 현학玄學을
                  함께 닦았다. 승려들이 부처를 팔아 사람들을 현혹함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지만 참다운 실상實相에는 깊게 통달하였다.”                6)




               이러한 평가로부터 이덕유가 회창법난會昌法亂(842~845)을 일으킨 까닭
             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당시 안사의 난 이후 당조는 점차 기울어가
             고 있었고, 불교와 유교 그리고 도교에서 당조를 다시 부흥시킬 새로운 사

             상들을 모색하였지만, 불교의 일단에서는 “부처를 팔아 사람들을 현혹함”

             의 자취가 남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덕유는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




             6)  [唐]劉禹錫, 『牛頭山第一祖融大師塔記』(補遺編29, 293b), “尙理信古, 儒玄交修. 始下令禁桑門販佛
                以眩人者, 而于眞實相深達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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